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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r willow
상처를 밀랍으로 채워 넣으려 해도 오히려 만질수록 더 아프다. 덧칠할수록 벗겨지는 수채화 그림처럼, 섞으면 섞일수록 어두워지는 잉크처럼. 그러니, 바람이 잦아든 수면처럼 잔잔히 그렇게 두어라. 덧나지 않게.
커피를 마시던 그 자를 바라보며 얼굴을 감싸고 있자, 이내 그 자가 잔을 내려놓으며 말을 건넨다. "내가 당신의 원에 들어온 게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군요." 원? 원이라, 무얼 말하는 걸까? 나의 시간을 말하는 걸까? 내가 있는 이 아주 사적이고 개인적인 공간을 말하는 걸까? 사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정중함을 가장하며 그 자의 말을 애써 부인한다. "그렇지 않소, 조금 당황스러울 뿐이지, 이런 일은 평생 겪어보지 못한 일이기에." 그런 사내의 말에 그 자의 입가에 걸려 있는 미소가 더욱 깊어진다. "스스로에게 솔직해지시오. 굳이 그렇게 숨을 필요 없소. 누가 봐도 당신은 지금 내가 불편한 듯 보이는 군." 그걸 알고 있으면서 저리 말한다니, 이 어찌 무례하기 짝이 없는 일인가? 겉으로는 최대한 미소를..
그와의 만남은 별다른 것 없는 그저 그런 만남이었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자주 가던 카페 바깥에 앉아 주문한 커피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의 에스프레소는 다른 곳과는 다르다고 느꼈다. 좀 더 깊은 맛이랄까? 고소한 향과는 달리 부드러운 맛은 일품이다. '그리고 절정은 바로 이 끝 맛이지' 혀끝을 마지막으로 스쳐 지나가는 커피의 맛은 쌉싸름한 것이 머릿속을 아리게 만든다. 그 감각에 저도 모르게 눈을 감고 입안에 퍼지는 온전한 씁쓸함을 만끽한다. 그게 하루 중에 남몰래 가지는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그렇게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두 손을 포개어 다리 위에 얹고는 지나가는 이들을 지켜본다. '최근에는 검회색 빛이 유행하는 모양이야.' 절묘한 각으로 손질되어 자랑이라 할 만한 콧수염을 매만지며 보니 모두들..
벌레마저 숨죽인 고요한 숲 속에서 발 밑으로 바스러지는 잎사귀 소리와 함께, 남 모르게 다녀간 여우비를 맞으니 싱그러움에 숨을 깊이 들이마신다. 몸을 숙여 조심스레 바닥을 보니 작은 새싹이 고개 들어 맞이한다. 풀숲 사이로 난 좁은 오솔길은 많은 이들의 방문을 속삭거려도, 이 작은 모든 것들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도 하지 않는다. 우리가 잃어버린 모든 순간.
선과 선들이 뻗어 나가다 보면 어느샌가 만나게 될 거다. 수많은 교차점에서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까? 정 모르겠다면 새로운 선을 그어 보자. 그렇게 그어 나가다 보면, 형태가 만들어진다. 그 형태가 만족스럽길, 고대해 본다.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