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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r willow
마른 풀 조각이 가득한 초원 한복판에 홀로 앉아 하루가 멀다고 명상에 빠진 이가 있다. 언젠가부터 같은 자세로, 같은 장소에서 무엇을 궁구하고, 성찰하는지 알지 못하지만, 그 모습은 가히 고귀해 보인다. 그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그리 명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 그의 명상은 우리 모두에겐 당연한 것이 되어 버렸지만. 소문은 멀리 퍼지고, 그의 명상을 직접 목도하고자 찾아오는 이들이 늘어났다. 한 명씩, 또는 무리 지어 그에게 찾아왔다. 가까이서 들여다보기도 하고, 멀리서 노려보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그와 함께 명상에 빠져 보기도 한다. 이윽고 그는 성인이 되었다. 뙤약볕 아래서도 땀방울을 흘리면서도 명상에 빠진 그의 모습에 모두가 감명을 받은 것이리라. 그를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작은 소포가 상처투성이로 힘겹게 문 앞에 도착했다. 수없이 붙였다 떼어내었을 흉터 가득한 소포에 한 줄기 슬픔이 수 놓는다. 아프지 않게, 그저 한 번이면 될 것을 홀로 아프게 수없이 고민한 그 모습을 탁자 위, 소포를 멍하니 바라본다. 조심스레 열어본 소포 속. 소복이 쌓여있는 수줍은 네 웃음에 발갛게 부어오른 눈두덩이. 상처 없을 다음을 기다리며 울려 퍼지는 웃음소리를 깊이 새겨본다. 기다림.
캔버스 위, 흐드러지게 피어난 그 위로 솜털처럼 묻어나는 작은 물감 자국 덧칠해도 사그라지지 않아 신경질적으로 놀리는 붓질 어느새, 검게 물든 캔버스 위 피어나는 상심에 이제는 별이 된 물감 자국들이 전하는 쏟아져 내리는 작은 위로 작은 별
안이 비쳐 푸른 멍이 보이고, 갈라진 틈새로 진물마저 비집어 나오고 있어도, 스치기만 해도 느껴지는 모든 알싸한 감각에도, 그럼에도 품으려 하기에. 작아져 버린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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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야, 모래 바위 그늘 아래 걸터앉아 길을 응시하면 모래 먼지 흩날리며 걸어오는 일단(一團)의 무리를 볼 수 있다. 낡은 옷자락, 붉게 달아오른 얼굴, 턱 끝으로 떨어지는 땀방울과 무거운 짐을 지곤 힘겹게 걸어오는 이들. 같은 길을 걷는다고 생각할 수 없는, 이들이 걷는 길. 길 위에서 얻는 것이 무엇일지, 그들을 응시하여 보아도 되돌아오는 것은 없다. 그저 희미한 미소뿐. 수십여 일 후, 낡은 우물가에 앉아 따갑게 달아오른 몸을 식히고 있자, 멀리서 다가오는 이들이 보인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천천히 다가오는 이들을 보니 여전한 미소를 짓고 있다. 길을 걷기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곤, 이제는 골목에 기대앉아 휴식을 취하려 하니 오랜만의 굵은 빗방울이 그들을 덮친다. 뜨거운 모랫바닥을 오래 걸어 부르터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