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한 편

마흔 일곱 번째 이야기.

Doe_nihil 2020. 9. 8. 21:01

마른 풀 조각이 가득한 초원 한복판에 홀로 앉아 하루가 멀다고 명상에 빠진 이가 있다.

 

언젠가부터 같은 자세로, 같은 장소에서 무엇을 궁구하고, 성찰하는지 알지 못하지만, 그 모습은 가히 고귀해 보인다.

 

그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그리 명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 그의 명상은 우리 모두에겐 당연한 것이 되어 버렸지만.

 

소문은 멀리 퍼지고, 그의 명상을 직접 목도하고자 찾아오는 이들이 늘어났다.

 

한 명씩, 또는 무리 지어 그에게 찾아왔다.

 

가까이서 들여다보기도 하고, 멀리서 노려보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그와 함께 명상에 빠져 보기도 한다.

 

이윽고 그는 성인이 되었다.

 

뙤약볕 아래서도 땀방울을 흘리면서도 명상에 빠진 그의 모습에 모두가 감명을 받은 것이리라.

 

그를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도시가 형성되고 이내 성지가 되었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명상하고 또 명상한다.

 

어느 날 어떤 거지가 그에게 다가가 처음으로 말을 걸었다.

 

“명상하는, 묵상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에 성인이 눈을 뜨고 되물었다.

 

“명상이라니요? 무얼 말하는 겁니까?”

 

“명상을 하고 계신 것 아니었습니까?”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군요.”

 

잠깐의 침묵과 함께 성인이 물었다.

 

“이곳에 모인 모든 이들이 제가 명상을 한다고 생각하고 계신 겁니까?”

 

“그렇습니다.”

 

“…”

 

성인은 거지의 말에 눈을 감고 다시 명상에 빠졌다.

 

거지는 그런 성인의 모습에 발걸음을 돌려 떠났다.

 

그리고 다음 날 항상 그 자리에 있던 성인이 나타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모두 패닉에 빠졌다. 성인의 실종에 모두가 발 벗고 찾아다녔지만 성인을 찾을 수 없었다.

 

며칠을 기다려도 성인이 나타나지 않자 사람들은 하나둘씩 떠나기 시작했다.

 

모두가 떠나고 홀로 남은 거지에게 성인이 다가왔다.

 

“왜 떠나지 않으셨습니까?”

 

“그럴 이유가 없더군요.”

 

“그렇군요.”

 

그렇게 성인마저 떠났다. 거지는 홀로, 여태까지 성인이 그러했던 것처럼 눈을 감고 가만히 자리를 지켰다.


선망의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