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한 편
마흔 세 번째 이야기.
Doe_nihil
2020. 7. 3. 12:30
황야, 모래 바위 그늘 아래 걸터앉아 길을 응시하면 모래 먼지 흩날리며 걸어오는 일단(一團)의 무리를 볼 수 있다.
낡은 옷자락, 붉게 달아오른 얼굴, 턱 끝으로 떨어지는 땀방울과 무거운 짐을 지곤 힘겹게 걸어오는 이들.
같은 길을 걷는다고 생각할 수 없는, 이들이 걷는 길.
길 위에서 얻는 것이 무엇일지, 그들을 응시하여 보아도 되돌아오는 것은 없다.
그저 희미한 미소뿐.
수십여 일 후, 낡은 우물가에 앉아 따갑게 달아오른 몸을 식히고 있자, 멀리서 다가오는 이들이 보인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천천히 다가오는 이들을 보니 여전한 미소를 짓고 있다.
길을 걷기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곤, 이제는 골목에 기대앉아 휴식을 취하려 하니 오랜만의 굵은 빗방울이 그들을 덮친다.
뜨거운 모랫바닥을 오래 걸어 부르터진 발바닥은 더 이상 어떤 걸음도 허용치 않고 찢겨진 옷자락 사이로 보이는 갈라진 입술은 맑은 핏방울이 송골히 맺혀있고 굳은살 가득한, 투박한 손가락은 고단함이 묻어나온다.
비에 젖은 옷자락은 지치고 약해진 이들의 마지막 체온마저 뺏어가고
그럼에도 잃지 않는, 입에 걸린 희미한 미소.
응시하고 있으니 그 위로 한줄기 흰빛이 흐른다.
그럼에, 함께 흐르는 이유 없는 한 줄기, 내리는 빗속으로 고개 들어 숨겨본다.
그때를 되돌아보면
그 흐릿한 미소가, 마지막 숨이 더없이 따스해서, 그래서 흘렀나 보다.
아직도 알지 못한,
다시는 잊지 못할 가장 아름다운 미소가.
삶, 순례